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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식의 야구노트] 마쓰자카, 투혼의 시대와 함께 저물다

시속 116㎞.일본인 투수 마쓰자카 다이스케(41·세이부)가 온몸을 쥐어짰다. 스트라이크 존을 벗어난 공은 타자 몸쪽으로 힘없이 향했다. 그의 마지막 투구는 그답지 않았다. 타자 바깥쪽을 겨냥해 시속 156㎞ 강속구를 뿜어냈던 괴동(怪童)은 중년의 모습으로 마운드에서 내려왔다. 지난 19일 일본 사이타마현 도코로자와시에서 열린 마쓰자카의 은퇴경기 풍경이었다.그는 요코하마 고교 시절부터 전국적인 스타였다. 1998년 여름 고시엔 야구대회 준준결승에서 연장 17회까지 250개의 공을 던지며 완투했다. 이튿날 준결승전에서는 구원승, 다음날 결승전에서는 노히트노런을 기록했다. 오사카 폭염 속에서 그는 사흘 동안 27이닝을 버텼다. 이 대회 6경기에서 그가 던진 공은 782개였다.일본인은 5000개 고교 팀이 벌이는 고시엔 열전을 프로야구 못지않게 사랑한다. 흑토 위에서 하얀 유니폼을 입고 온몸을 던진 마쓰자카는 고시엔의 상징이었다. 투혼으로 한계를 뛰어넘고 싶어 한, 세기말의 낭만이었다.1999년 일본 프로야구 세이부에 입단한 그는 16승 평균자책점 2.60을 기록하며 고졸 투수로는 33년 만에 신인왕을 차지했다. 그해 5월 처음 상대한 당대 최고 타자 이치로 스즈키를 3연속 삼진으로 잡아낸 뒤 마쓰자카는 “자신감이 확신으로 바뀌었다”고 포효했다.마쓰자카의 등장은 일본의 사회현상이었다. 고교 시절부터 그와 경쟁하며 꿈을 키운 선수들을 ‘마쓰자카 세대’로 불렀다. 기성을 뛰어넘고, 세계 최고를 꿈꾼 일본의 에코 세대(베이비붐 세대의 자녀들)다.그즈음 마쓰자카는 한국에서도 경외와 공포의 대상이었다. 프로 선수들이 처음 참가한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 한국 야구는 드디어 그와 마주했다. 결과는 모두가 아는 대로다. 마쓰자카는 한국과 예선전에서 1회 이승엽에게 투런포를 맞고 무너졌다. 나흘 후 열린 동메달 결정전에서는 이승엽에게 3연속 삼진을 빼앗았다. 그러다 8회 결승 2루타를 얻어맞고 펑펑 울었다.마쓰자카는 변화구도 잘 던졌다. 그러나 이승엽을 삼진으로 잡은 결정구도, 일격을 맞은 공도 직구였다. 1999년 54홈런을 터뜨리며 아시아 홈런 신기록(55홈런·1964년 오 사다하루)에 근접한 한국의 홈런타자를 힘으로 누르고 싶어 했다. 당시 이승엽은 “(공이 너무 빨라서) 어떻게 쳤는지 모르겠다”고 겸손하게 말했다.올림픽 이후에도 마쓰자카는 아시아를 대표하는 괴물이었다. 8년 동안 거둔 승리(108승)나 탈삼진(1355개)보다 72번의 완투(완봉 18번)가 가장 그다운 기록이었다. 2006년 겨울 메이저리그(MLB) 진출을 선언한 그를 잡기 위해 보스턴 레드삭스가 5111만 달러를 베팅해 협상권을 따냈다. 6년 총 연봉은 5200만 달러. 이적료까지 더해 마쓰자카를 데려오는 데 1억 달러(1170억원) 이상을 썼다. MLB 특급 투수를 영입할 수 있는 돈이었다.그때 마쓰자카는 그렉 매덕스 같은 제구를 가졌으면서 더 빠른 공을 던진다는 평가를 받았다. 실험실에서만 존재한다는 자이로볼(총알처럼 진행 방향을 축으로 회전하는 공)이라는 마구도 던진다고 MLB에 소개됐다. 이치로에 이어 미국에 수출하는 일본 최고의 브랜드였다.마쓰자카는 2007년 15승, 2008년 18승을 거뒀다. 이후 4년간은 부상과 부진에 시달렸다. 공을 너무 많이 던지는 게 그의 문제였다. 완투가 투수의 목표라는 그의 생각은 미국에 가서도 변함없었다. 그뿐만 아니라 등판일 사이 불펜 피칭도 200개씩 했다. 구단이 말려도 마쓰자카는 “동양인과 서양인의 체격이 다른 만큼, 훈련법도 달라야 한다”고 주장했다. 어깨는 쓰면 쓸수록 단련된다고 그는 믿었다.그러나 마쓰자카의 어깨는 다른 투수들처럼 쓰면 쓸수록 마모됐다. 서른 살도 되기 전에 그의 구속이 떨어졌다. 더불어 변화구의 위력도 감소했다. 그래도 마쓰자카는 투구 수 관리 같은 건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던지고 또 던졌다. 그는 2006년에 이어 2009년에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일본 대표로 나갔다. 1라운드 한국전에서 1회 김태균에게 직구를 던지다 비거리 140m의 대형 홈런을 맞았지만, 첫 대회에 이어 2009년에도 일본의 우승을 이끌고 최우수선수(MVP)에 올랐다.젊은 시절 마쓰자카의 인기는 지금 오타니 쇼헤이(27·LA 에인절스) 이상이었다. 일본의 자신감이 최고조일 때 탄생한 스타였기 때문이다. 그의 전성기는 불꽃처럼 화려했으나 짧았다. 2015년 일본으로 돌아와 소프트뱅크, 주니치, 세이부를 떠돌면서 마쓰자카는 한 번도 예전 같은 강속구를 던지지 못했다. 폼도 완전히 망가져 있었다. 말년에는 많은 연봉을 받고도 제대로 활약하지 못하자 팬들의 비난도 많이 받았다.육체적으로 망가지고 정신적으로 지친 그는 결국 은퇴를 결심했다. 투지로 스스로를 불사른 마쓰자카의 마지막 공은 느리고 삐딱하게 흘렀다. 일본은 물론 한국·미국에서 여러 서사를 남긴 그의 야구 궤적은 이렇게 끝났다. 그는 “안티팬들에게도 감사한다”고 말했다.지금도 고시엔에서 많은 선수들이 큰 꿈을 꾼다. 이제 마쓰자카처럼 미련스러울 만큼 우직한 투수는 다시 나오기 어렵다. 까까머리 고교생들도 더 효율적이고 과학적인 성공법을 찾고 있다. 마쓰자카 세대가 투혼의 시대와 함께 퇴장하고 있다. 김식 스포츠팀장 2021.10.22 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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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식의 야구노트] 신화를 깨운 만화

1930년대 일본인들은 엄청난 인기와 존경을 받는 베이브 루스(1895~1948)를 미국의 왕으로 인식했다고 한다. 1910년대 투수로 더 유명했던 루스는 1920년 54홈런, 이듬해 59홈런을 터뜨리며 야구의 매력을 세상에 알렸다. MLB 인기는 그의 업적 위에서 만들어졌다. 그와 뉴욕 양키스에서 함께 뛴 투수 웨이트 호이트는 “모든 메이저리거의 아내와 아이들은 식사 전 루스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고 말했다.루스는 1930년 MLB 최초로 연봉 8만 달러를 받았다. 이는 당시 미국 대통령 연봉(하버트 후버 7만 5000달러)보다 높아 사회적 반발이 일부 있었다. 루스는 “내 연봉이 후버와 무슨 상관인가? 게다가 올해 난 그보다 나았다”고 일갈했다. 올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연봉은 40만 달러다. 트레버 바우어(LA 다저스)는 4000만 달러를 받는다.미국 야구의 신화는 2021년 자주 소환됐다. ‘일본의 루스’로 불리는 오타니 쇼헤이(27·LA 에인절스) 덕분이었다. 그는 4일(한국시간) 시애틀 매리너스와 MLB 정규시즌 최종전에서 1회 솔로홈런을 날렸다. 9월까지 아메리칸리그(AL) 홈런 선두를 달렸던 오타니는 홈런 46개로 시즌을 마쳤다. AL 홈런왕은 블라디미르 게레로 주니어(토론토 블루제이스)와 살바도르 페레스(캔자스시티 로열스·이상 48개)가 차지했다.그래도 오타니가 루스와 비교될 만큼 위대한 시즌을 보낸 건 틀림없다. 마지막 날 터진 홈런으로 그는 MLB 최초로 한 시즌 100이닝, 100탈삼진, 100안타, 100타점, 100득점 이상(130과 3분의 1이닝, 156탈삼진, 138안타, 100타점, 103득점)을 기록했다. 이른바 ‘퀸튜플(quintuple) 100’의 주인공이 된 것이다.시속 160㎞ 이상의 강속구와 낙폭 큰 포크볼을 던지는 오타니는 올해 마운드에서 9승 2패 평균자책점 3.18을 기록했다. 마지막 두 경기(8이닝 2실점, 7이닝 1실점) 중 한 번이라도 이겼다면, 1918년 루스(13승·11홈런) 이후 103년만에 10승·10홈런 이상을 기록한 선수가 됐을 것이다.오타니 덕분에 팬들은 진기한 장면을 자주 봤다. 그는 7월 14일 야구 역사상 처음으로 선발 투수이자 지명타자로 올스타전에 나섰다. 8월 13일에는 홈런 1위였던 오타니가 마운드에서 당시 홈런 2위 게레로 주니어를 삼진으로 잡아내기도 했다. 2021년 MLB는 처음부터 끝까지 ‘오타니 시즌’이었다.그가 2018년 미국 야구에 상륙할 때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당시 미·일 전문가들은 “오타니의 꿈을 응원하지만, 결국 투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일본에서 때린 홈런은 22개(2016년)가 최다였기에 MLB에선 타자로 살아남기 어렵다고 본 것이다.오타니는 학창 시절부터 큰 목표를 세웠고, 엄청난 노력과 인내로 기어이 이뤄냈다. 그리고 더 큰 꿈을 꿨다. 오타니는 자신을 탐낸 여러 MLB 구단 중 투타 겸업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고 약속한 에인절스를 선택했다.2018년 4승·22홈런을 기록하며 AL 신인왕에 오른 그는 시즌 뒤 오른 팔꿈치 수술을 받았다. 2019년엔 타자로만 나섰고, 2020년에는 투타 모두에서 부진했다. 투타 중 하나를 선택하고 집중하는 게 순리로 보였다. 그렇지 않으면 MLB에서 생존하기 어려워 보였다.그러나 오타니는 불가능의 영역으로 한 걸음 더 들어갔다. 키(1m93㎝)가 큰 데도 신체 균형이 뛰어났던 그는 지난겨울 혹독한 훈련과 식이요법으로 근육을 키웠다. 오타니의 체중이 100㎏을 돌파하자 “투수의 몸이 아니다”라는 비판이 쏟아졌다.오타니는 개의치 않았다. 야구 만화의 주인공처럼 던지고, 때리고, 달리는 게 가능하다고 그는 믿었다. 그는 올해 3루타 8개(AL 1위), 도루 26개(AL 5위)를 기록했다. 그가 투수와 타자 중 하나만 선택했다면, 그래서 더 많은 이닝과 타석 기회를 얻었다면 어떤 기록을 만들어냈을지 예측하기 어렵다.루스의 한 시즌 최다 홈런(1927년 60개) 기록은 로저 매리스가, 통산 홈런(714개)은 행크 에런이 경신했다. 신화가 깨질 때마다 미국 팬들은 야유를 퍼부었다. 특히 흑인 에런은 숱한 살해 협박을 받았다. 루스보다 99년 늦게 태어난 아시아인 오타니에 대한 태도는 전혀 다르다. 둘을 직접 비교하기 어려울 만큼 오랜 시간이 지났기 때문일 것이다. 또 오타니의 노력과 집념을 통해 팬들은 100년 전 루스와 재회한다고 여기는 것도 같다.미국 팬들도 만화 같은 꿈을 꾸는 오타니를 사랑하고 경외하고 있다. 김식 스포츠팀장 seek@joongang.co.kr 2021.10.05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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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식의 야구노트] 경기장 밖 ‘3밀 응원’ vs 경기장 안 ‘거리두기’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는 14일 두산 베어스와 홈 경기 9회 말, 노태형의 끝내기 안타로 7-6으로 승리했다. 1985년 삼미 슈퍼스타즈의 프로야구 역대 최다 연패(18연패)와 타이를 이뤘다가, 벼랑 끝에서 간신히 탈출했다. 한화 선수들 함성은 관중석이 텅 빈 대전 한화생명이글스파크에 울려 퍼졌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무관중 경기로 진행되는 KBO리그에선 익숙한 풍경이다. 현장 인근에 한화 팬이 아예 없었던 건 아니다. 일부 팬이 야구장 뒤 보문산 전망대에서 응원 깃발을 흔들며 환호했다. 선수는 잘 보이지 않았고, 응원 소리는 닿지 않을 만큼 먼 거리다. 그래도 그들은 한화 야구를 ‘직관’하며 응원했다. 접근성이 좋은 광주 KIA챔피언스필드에서는 이런 장면을 더 자주 볼 수 있다. 서울 잠실구장 인근 술집에서는 경기가 열릴 때마다 LG와 두산 팬들이 모여서 응원전을 벌인다. 지난달 5일 개막한 KBO리그가 무관중 경기로 진행되고 있다. 팬들은 이미 여러 형태로 야구를 즐기고 있다. 그런데 음식점과 주점에서 하는 실내 응원이 걱정스럽다. 질병관리본부(질본)가 시민에게 경계하라고 당부한 ‘3밀(밀폐된 장소, 밀집한 모임, 밀접한 접촉)’에 모두 해당한다. 질본과 문화체육관광부, 한국야구위원회(KBO)는 정규시즌 개막 전부터 단계적 관중 입장 계획을 세웠다. 무관중 경기로 시즌을 시작한 뒤, 관중석 10% 개방을 시작으로 차차 문을 넓힐 방침이었다. 하지만 코로나19확산세가 쉽게 꺾이지 않으면서 40일 동안 관중이 입장하지 못했다. 대신 경기장 밖 응원은 늘었다. 문체부와 KBO는 언제까지 ‘3밀 응원’을 두고 볼 건지 고민해야 한다. 오히려 ‘야구장 방역’ 매뉴얼을 만들어 ‘안전힌’ 응원을 ‘양성화’하는 편이 낫지는 않은가 숙고해야 한다. 야구장은 다른 유흥, 여가 시설과 비교해도 생활 방역을 실천하기 좋은 조건이다. 9개 구장 중 8개가 야외여서 환기 걱정이 없다. 또한 관중석이 지정 좌석제라서 1m 이상의 거리 두기가 가능하다. 다만 야구장 관중 입장이 걱정스러운 건 한국 특유의 응원문화 때문이다.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KBO리그의 열정적 응원은 필연적으로 비말 전파를 동반한다. 코로나19 시대에 예전처럼 응원가를 부르고 함성을 지른다면, 야구장은 실내 시설만큼이나 위험할 것이다. 경기장에서 반드시 마스크를 쓰게 하고, 큰 소리 응원도 금지해야 한다. 아울러 ‘치맥’으로 대표되는 야구장 식사 문화도 달라져야 할 것이다. 식당이 아닌 관중석에서 마스크를 벗고 맥주와 음식을 즐긴다면 감염 위험이 높다. 이에 대한 대비책도 있어야 한다. ‘야구장 방역’ 매뉴얼을 만들고, 잘 따르게 유도한다면 이는 오히려 생활 방역의 훌륭한 모델이 될 수 있다. 야구장 입장권은 신용카드로 결제하기 때문에 이용자 정보를 파악, ‘깜깜이 감염’을 막을 수 있다. 팬 입장에서는 마음껏 소리 내 응원할 수 없어 답답할 수 있다. “응원가도 부르지 못하는데 무슨 재미로 야구장에 가느냐”고 되물을 수 있다. 그러나 ‘야구장 방역’ 매뉴얼을 만들지 못하고, 시민이 협조하지 않으면 ‘직관’은 영영 어려울 수 있다. 이제 구단과 팬은 새로운 방식으로 스포츠 콘텐트를 만들고 즐길 방법을 찾아야 한다. 우리는 몇 달 전과는 전혀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다. 김식 야구팀장 seek@joongang.co.kr 2020.06.16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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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식의 야구노트] ‘재난 상황’ 한화, 컨트롤 타워는 누군가

야구의 신이 있다면 묻고 싶다. “한화가 어떻게 해야 잘할 수 있냐”고. 야구 경영에 특화된 인공지능(AI)이 있다면 역시 묻고 싶다. “어떻게 해야 한화를 잘 지원할 수 있냐”고. 구체적으로 어떤 답이 나올지 모르지만, 윤곽은 짐작할 수 있다. 한화가 야구를 잘하려면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구단 지원은 전방위적이고 장기적이어야 한다. 2020년 6월의 한화 야구는 누구라도 그렇게 말할 수 있다. 한용덕(55) 한화 감독이 7일 NC 다이노스전에서 구단 역사상 최다 연패(14연패)를 당하자 사퇴했다. 하루 전인 6일 장종훈 수석코치, 정민태 투수코치, 김성래·정현석 타격코치, 박정진 불펜코치가 갑작스럽게 1군에서 제외됐다. 한 감독은 핵심 코치도 없이 그날 경기를 치렀다. 다음날 그가 사의를 표명하자, 구단은 곧바로 최원호(47) 퓨처스(2군)리그 감독을 감독대행으로 선임했다. 감독과 그의 측근인 코치를 바꾸는 건 한화가 지난 10년 내내 해온 일이다. 그렇게 바꿔도 별로 달라진 건 없다. 한화는 2009년 최하위로 추락한 후 11년 동안 한 차례 포스트시즌에 진출(2018년 3위)했을 뿐이다. 이 기간 김인식(2006~09년), 김응용(13~14년), 김성근(15~17년) 등 ‘삼김(三金) 감독’이 한화에서 지도자 커리어를 마감했다. 대전 출신으로 여러 팀을 거친 한대화(10~12년), 한화 프랜차이즈 스타 출신 한용덕(18~20년) 감독도 썼다. 한화는 다양한 감독에게 지휘봉을 맡겼을 뿐 아니라, 2013년부터 3년간 자유계약선수(FA) 시장의 ‘큰손’이었다. 김태균 등 소속 팀 FA를 잡았고, 정근우·이용규·권혁·송은범·배영수·정우람 등을 영입했다. 선수가 조금씩 바뀌어도 팀이 달라지지 않았다. 지금껏 백약이 무효였기에 해법을 찾기 어려운 것이다. 한화 암흑기는 2005년 시작됐다는 분석이 있다. 당시 한화는 신인 드래프트에서 4라운드까지만 참여하고 지명권을 포기했다. 2006년에는 7라운드에서 멈췄다. 선수층이 두꺼운 팀들도 10명을 꽉 채우는데, 한화는 스카우트와 육성 단계부터 소홀했다. 제9 구단 NC와 10구단 KT 위즈가 창단해 특별지명으로 선수를 영입하자, 당시 한화 관계자는 “신생 구단 전력이 우리보다 낫다”고 푸념했다. 엄살 같았던 그의 말은 오래지 않아 현실이 됐다. 한화는 외국인 선수 영입과 트레이드에도 번번이 실패했다. 한때 FA 쇼핑을 열심히 했지만, 중심타자나 에이스를 영입한 건 아니었다. 선수를 키워서 쓰겠다고 강조했으나, 1군 재목은 몇 년째 안 보인다. 실책과 실기(失機)가 겹친 총체적 난맥이다. 이걸 단기간에 해결하려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다. 원인 분석이 한가하게 느껴질 만큼 한화는 재난 상황이다. 재난 극복은 한화 팬뿐 아니라, KBO리그 구성원 모두의 바람이다. 감독과 단장이 자주 바뀐 탓에, 한화는 컨트롤 타워가 누구인지조차 불분명하다. 현재 한화 야구단에서 가장 큰 권한과 많은 경험을 가진 사람은 박정규 대표이사일 것이다. 2015년 5월 단장으로 부임한 그는 2017년 사업본부장을 거쳐 지난해 대표이사가 됐다. 같은 재난을 여러 번 겪었다면 대응 매뉴얼이 있어야 한다. 참고할 사례는 국내외에 많다. 5년 후, 10년 후에는 한화가 달라질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이미 늦었다. 지금 당장 해야 한다. 김식 야구팀장 seek@joongang.co.kr 2020.06.09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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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식의 야구노트] 강정호, 시장의 징계가 아직 남았다

한국야구위원회(KBO) 상벌위원회가 강정호(33)의 음주운전 징계 문제를 논의한 25일 서울 도곡동 야구회관. 강정호의 법률 대리인 김선웅 변호사(전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 사무총장)는 “규약과 법 원칙 등을 고려해 합리적인 판단을 해달라고 부탁했다. 상벌위원장이 법조인(최원현 변호사)”이라고 말했다. 결과는 1년간 유기 실격 및 봉사활동 300시간이었다. 이로써 징역 8개월, 집행유예 2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던 그는 이르면 내년 KBO리그에서 뛸 수 있다. 곧바로 강정호의 에이전시 리코 스포츠는 사과문을 언론사에 발송했다. 사과문에 강정호는 “야구를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해보고 싶다. 잘못을 갚고, 누구보다 열심히 봉사하겠다”고 적었다. 여러 전문가가 나서서 이성(법리)을 설득하고, 감성(봉사)을 자극했다. 매우 유기적인 대처였다. 강정호가 음주운전으로 적발된 건 2016년 12월이다. 당시 그는 메이저리그(MLB) 피츠버그 소속이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넥센(현 키움)에서 뛸 때의 두 차례 음주운전 적발(2009, 11년) 사실이 알려졌다. 그가 한국에서 뛰려면 법원 판결과 별개로 KBO의 징계를 받아야 한다. KBO 규약 제151조 품위손상행위에 관한 제재 규정에 따르면, 음주운전 3회 이상 적발 선수는 3년 이상의 유기 실격 처분이 내려진다. 다만 이는 2018년 개정, 강화된 조항이어서 강정호에게는 적용되지 않았다. 길기범 변호사(법률사무소 로진)는 “강정호 징계는 법률 불소급이라는 헌법 원칙을 따른 것으로 보인다. KBO는 사단법인이지만, 헌법 원칙에 어긋난 징계를 내릴 수 없다. 선수에게 불리한 징계를 내리면 소송을 피하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범죄는 행위 시의 법률에 의해서만 처벌되고, 소급되지 않는다는 점을 강정호 측이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앞서 강정호는 개인 자격으로 임의탈퇴 복귀 신청서를 제출했다. 원소속구단(키움)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 개인 힘으로 징계를 최소한 것이다. 예상보다 낮은 징계가 내려지자, 일부 팬은 ‘강정호를 프로야구에서 퇴출해 달라’고 청와대에 국민청원까지 하고 있다. KBO의 중징계는 용케 피했지만, 강정호는 시장의 평가를 다시 받아야 한다. 경기력이 아니라, KBO리그의 구성원으로서 자격이 있는지에 대한 문제다. 특히 세 번째 음주운전 적발 때는 뺑소니 및 운전자 바꿔치기까지 저질렀다. 공은 키움 구단에 넘어갔다. 가뜩이나 키움은 각종 사고로 시끄러운 팀이다. 키움에는 KBO가 정금조 클린베이스볼센터장이 투명경영관리인으로 파견돼 있다. 그런 키움이 강정호를 끌어안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다른 시나리오는 키움이 강정호와 계약한 뒤 트레이드하는 것이다. 사나운 여론을 고려하면 다른 구단도 강정호가 부담스럽긴 마찬가지다. 법리 싸움에서 이긴 강정호에게 필요한 건 여론전 승리다. 이미 강정호 측은 움직이기 시작했다. 26일 몇몇 매체를 통해 ‘강정호가 국내 팀과 계약하면 연봉을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계획을 반성문에 담았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의 사과에 진정성이 있는지 잘 모르겠다. 기부 의사가 있었다면, MLB에서 연봉을 받으면서도 할 수 있었다. 사고는 서울에서 쳤기 때문이다. 2017년 프랭크 쿠넬리 피츠버그 사장은 “강정호에게 두 차례 음주운전 경력이 있는 걸 알았다면 아마 영입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피츠버그는 2년 뒤 그를 재영입했다. 기량이 전과 같지 않다는 걸 확인하자 미련 없이 방출했다. KBO리그에도 이런 구단이 있을까. 머지않아 알게 될 것이다. 얼마가 됐던 강정호에게 ‘시장의 징계’는 필요해 보인다. 김식 야구팀장 seek@joongang.co.kr 2020.05.27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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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식의 야구노트] 오디오로 중계된 비디오 판독의 허술함

14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열린 두산-롯데전 심판 판정을 리플레이한다. 두산이 0-2로 앞선 2회 초, 무사 1루에서 두산 최주환이 볼카운트 1볼-2스트라이크에서 스윙했다. 오훈규 주심은 스윙 아웃을 선언했다. 그리고는 롯데 포수 정보근에게 뭔가를 묻는 듯했다. 김태형 두산 감독은 비디오 판독을 요청했으나, 판정은 바뀌지 않았다. 화면 각도에 따라 최주환의 배트에 공이 스친 것(파울) 같기도 하고, 아닌 것(스윙) 같기도 했다. 판독 결과 발표 후 방송사가 내보낸 화면에서는 배트에 공이 스친 듯 보였다. 김 감독은 판독 결과에 불복했고, 자동 퇴장(KBO리그규정 제28조 11항③) 당했다. 비디오 판독도 100% 정확한 건 아니다. 이 장면은 화면으로만 보면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비디오에 오디오를 더하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주심은 정보근에게 “바운드야?”라고 물었다. 정보근은 “노바운드”라고 대답했다. 같은 말이 오가다가, 주심은 “맞은 것은 맞는데. 오케이”라며 아웃 판정을 재확인했다. 올 시즌 한국야구위원회(KBO)는 중계사와 합의해 심판에게 마이크를 채웠다. 일종의 ‘음성 지원 서비스’ 개념이다. 팬 서비스를 하려다 자칫 거친 욕설이라도 나오지 않을까 우려했는데, 엉뚱한 사고가 터졌다. 심판과 포수의 황당한 대화가 팬에게 그대로 전달된 것이다. 파울-스윙 상황은 순식간에 벌어진다. 심판도 자신의 판정을 확신하지 못할 수 있다. 스윙이라고 판단했으면 바운드 여부를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파울로 의심됐다고 해도 이해당사자인 포수에게 물어서는 안 된다. 이 대화를 들은 팬은 황당할 수밖에 없다. 또 다른 오디오 변수도 있었다. 김 감독이 판독 결과에 불복한 건 파울 소리를 들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무관중으로 경기가 진행돼 벤치까지 소리가 전해진 것이다. 이 장면에서 ‘팍, 팍’ 소리가 들렸다. 파울이 맞다면 파울 소리, 공이 바운드되는 소리, 공이 미트에 들어가는 소리가 들려야 한다. 소리를 아무리 분석해도 두 번밖에 들리지 않았다. 물론 세 번째 소리가 있다고 해도 다른 소리에 묻혔을 가능성은 있다. 요컨대 오디오 정보가 정확할 순 없다는 거다. KBO는 ‘불확실한 판정과 미숙한 운영으로 혼란을 초래했다’며 오 심판을 퓨처스(2군) 리그로 내려보냈다. 이 기회에 정리할 문제는 분명히 있다. 먼저 경기장 음성을 판독 범위에 넣어야 하는지 고민이 필요하다. 현재는 관례로 소리도 듣고 있다는데, 명확한 규정이 없다. 또 하나, 비디오 판독 규정을 정확하게 알고 실행해야 한다. 김 감독은 손짓으로 네모를 그리며 비디오 판독을 요청했다. 판독 대상은 명확히 하지 않았다. 판독센터는 파울-헛스윙에 대해 검증했고, 원심(헛스윙)을 유지했다. 그러자 김 감독은 “파울 소리는 분명히 들었다. 내가 요청한 건 포구 판독”이라고 주장했다. 노바운드로 잡았다면 파울팁 아웃이고, 원바운드로 잡았다면 파울이다. 느린 그림을 보면 정보근은 원바운드로 포구했다. 류대환 KBO 사무총장은 “감독이 판독 대상을 명확하게 지정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심판이 감독에게 되물어 확인해야 한다. 앞으로는 이 원칙을 잘 지켜달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정비되지 않은 제도와 낯선 ‘음성 지원 서비스’가 초유의 해프닝을 낳았다. 김식 야구팀장 seek@joongang.co.kr 2020.05.19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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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식의 야구노트] 공 판정도 '로봇'에 맡길 때가 오고 있다

한·미·일 프로야구에서 최초로 개막한 KBO리그가 세계 야구팬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개막 후 3경기만 봤을 뿐인데 외신들은 칭찬과 감탄을 쏟아내고 있다. 신종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유행하기 전에는 상상할 수조차 없었던 'K-Ball' 열풍이다. 그러나 흥겨운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장면이 나왔다. '심판 판정에 대한 갈등'이다. 선수 입장에서 보면 '심판에 대한 불신'이다. 한화 주장 이용규는 7일 인천 SK전에서 4타수 2안타·2득점을 기록한 뒤 방송사와 수훈 선수 인터뷰를 했다. 축하와 덕담이 오간 뒤 그는 인터뷰 말미에 "마지막으로 한 마디 해도 되겠습니까"라고 양해를 구했다. 이용규는 "다른 선수들도 그렇고, 다른 팀도 그렇다. 개인적으로 억하심정이 있는 건 아니다. 선수들 대부분이 공 판정에 대해, 일관성에 대해 불만이 굉장히 많다"라고 말했다. 판정에 대한 불만을 의도적으로, 공개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이어 이용규는 "안타 하나를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하는 선수들이 있다. 심판들께 부탁을 드리고 싶다. 선수들이 너무 헷갈리는 부분이 많다. 선수 입장도 생각해주셔서 조금만 신중하게 잘 봐주셨으면 한다. 노력하시는 걸 알고 있지만, 선수들 마음도 헤아려주시고, 이해해 주시면 감사하겠다"라고 덧붙였다. 예의를 갖춰 말했지만, 그의 말은 상당히 날카로웠다. 선수들이 경기 중 심판 판정에 항의하는 일은 드물지 않다. 그러나 경기 후 냉정해진 상태에서 인터뷰를 통해 어필하는 사례는 처음이었다. 이용규가 에둘러 표현했지만 이날 경기 중 '문제의 장면'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3회 타석에서 SK 잠수함 투수 박종훈을 상대했을 때다. 초구가 볼로 판정을 받았다. 포수 마스크 높이였다. 키가 크지 않고, 웅크린 타격자세를 가진 이용규의 어깨높이였다. 그래서 주심이 볼로 판정한 것이다. 박종훈의 2구는 1구와 거의 같은 곳으로 들어왔다. 주심은 스트라이크를 선언했다. 이용규가 타석에서 물러나며 아쉬움을 드러낸 장면이다. 3구째는 1·2구보다 아주 약간 낮게 들어와서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았다. 볼카운트가 몰린 이용규는 5구 만에 헛스윙 삼진 아웃됐다. 스트라이크 투구 분포를 분석하는 '스트존'에 따르면, 문제의 공 3개는 보더라인을 타고 들어왔다. 만약 이 장면만 가지고 이용규가 어필했다면 근거가 약할 수 있다. 그렇다고 이용규의 말을 흘려들을 순 없다. '스트존'에 표시되는 가상의 존은 2차원이다. 3차원의 실제 존을 완벽하게 나타낼 수 없다. 또한 야구규칙이 정의한 스트라이크존 상단은 어깨의 윗부분과 바지의 윗부분의 중간점이다. 이용규 입장에서는 1·2구가 높았다고 볼 수 있고, 탄착점이 거의 같은 투구가 다른 판정을 받은 것에 대해 '일관성'을 문제 삼을 수 있다. 같은날 광주에서도 공 판정에 대한 신경전이 벌어졌다. 3회 말 KIA 공격 때 주심이 더그아웃에 있던 키움 투수 브리검에게 경고한 것이다. 브리검은 마운드에 있는 동료 최원태가 불리한 공 판정을 받는다고 생각해 더그아웃에서 소리친 것이다. 키움 투수 최원태는 KIA 김선빈에게 볼넷을 내줬다. 이 가운데 1·3·5구가 스트라이크존 하단을 스쳤다. 홈플레이트 근처에서 살짝 가라앉는 투심 패스트볼이 모두 볼 판정을 받았다. '스트존'에서는 3·5구가 스트라이크존을 통과했다. 이 경기를 중계한 허구연 해설위원은 "키움 외국인 선수(브리검)가 항의할 만 했다"고 말했다. 두 장면 모두 뜨거운 이슈가 될 만한 사안이었다. 특정 장면만 보면 "선수가 옳았다" 또는 "심판이 잘 봤다"고 평가할 수 있다. 진짜 문제는 선수와 심판, 그리고 팬 사이의 불신이 수년 동안 축적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곧 리그에 대한 실망과 불신으로 이어질 수 있다. 기술의 발달은 이미 인간의 시력을 이미 앞질렀다. 주심의 아날로그 판정을 1~2초 후 디지털 화면으로 검증하는 시대다. KBO는 하반기 퓨처스(2군)리그에서 로봇 심판을 테스트 한다. 지난해 미국 독립리그에서 시험한 바로는 아직 오류가 꽤 많이 나온다고 한다. 로봇 심판이 완전해질 때까지 굳이 기다려야 하나 싶기도 하다. 현재 레이더 추적 기술로도 볼-스트라이크를 '인간보다는' 정확히 구분할 수 있다. 무엇보다 레이더는 '감정'이 없기 때문에 서로 싸울 일이 없다. 스트라이크 판정은 심판 고유의 영역이자 권위의 상징이었다. 2014년 메이저리그와 KBO리그가 비디오 판독을 도입했지만, 볼-스트라이크 판정은 판독 대상에서 제외됐다. 그 사이 팬과 선수들은 더 정확하고 디테일한 데이터로 심판 판정을 '판정하고' 있다. 이는 인간의 잘못이 아니라 기술의 진보 때문이다. 아웃-세이프 판정을 비디오에 처음 맡겼을 때 한국도, 미국도 걱정이 많았다. 시스템이 안정되자 불필요한 갈등이 줄었다. 이제는 볼-스트라이크 판정에 대한 소모를 줄여야 할 때다. 공 판정도 비디오 화면과 레이더 기술에 의지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그게 선수와 심판, 그리고 리그의 가치를 지키는 일 같다. 김식 야구팀장 seek@joongang.co.kr 2020.05.08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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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식의 야구노트] 선수의 존재 이유는 팬, 무관중이라 더 절감

몇 년 전 “팀에 어떤 변화가 필요한지” 묻자 한 프로야구 선수가 답했다. “구단 홈페이지가 없으면 됩니다.” 그 말에 동의할 순 없었지만, 이해 못 할 것도 아니었다. 인터넷에는 선수와 감독·코치·구단에 대한 감정적 비난이 넘쳐난다. 당사자뿐 아니라 가족까지 물어뜯는다. 소수라도 목소리가 크다. 프로야구는 한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스포츠다. 미움도 많이 받는다. 2010년 이후 KBO리그 경기력은 계속 떨어지고 있다. 반면 선수 몸값은 계속 올랐다. 사인 한장 해주는 걸 귀찮아하는 선수가 꽤 된다. 야구 스타에 대한 동경이 전과 같지 않다. 많은 선수가 ‘악플보다 무플이 낫다’고 생각했다. 2020년 5월 5일은 출범 39년째인 KBO리그 선수와 팬이 가장 멀리 떨어진 날이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개막이 예정보다 38일 늦었다. 그래도 어린이날의 야구는 기적 같았다. 야구 종주국 미국, 선진국 일본이 리그 일정조차 잡지 못한 상황에서 KBO리그를 생중계했다. 그들은 한국에서 야구 개막 매뉴얼을 받아갔다. 미·일 야구를 쫓아가던 KBO리그는 자부심을 느낄 만한 과정이었다. 리그 구성원 모두의 헌신 덕분이다. KBO 사무국은 정부의 방역 방침을 따르면서도 매주 회의를 열어 코로나19 대응책을 마련했고, 개막을 준비했다. 구단과 선수단에서는 단 한 명의 확진자도 나오지 않았다. 개막전이 열린 5개 구장 관중석은 텅 비었다.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사회적 거리 두기’가 ‘생활 방역’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무관중으로 경기했다. 팬은 경기장을 찾는 대신, TV 중계를 보며 인터넷에 모여 야구를 즐겼다. 역설적으로 이런 상황에서 선수와 팬의 ‘심리적 거리’는 근래 들어 가장 가까워졌다. 선수들은 텅 빈 관중석을 보며 자신의 존재 이유를 되돌아볼 기회를 가졌다. 보는 사람이 없다면, 아무리 빠른 투구도, 아무리 큰 홈런도 ‘그깟 공놀이’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을 것으로 믿는다. 관중석에서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그러나 팬이 내지른 ‘침묵의 함성’이 온라인에서 뜨겁게 퍼졌다. 여기에 KBO리그 특유의 발랄한 아이디어가 더해졌다. SK는 ‘무관중’을 빗대 플래카드에 무를 그려 좌석에 배치했다. KT는 어린이 회원이 투명 볼 안에 들어가 비접촉으로 시구했다. 개막을 앞두고 2일 온라인으로 진행된 미디어데이 행사는 ‘덕분에 챌린지’로 시작했다. 코로나19와 싸움에 앞장선 의료진에 대해 감사를 전했다. 어린이날 개막을 성공적으로 끝낸 선수들이 고마워할 대상은 더 있다. 리그 축소가 불가피한 미국·일본은 선수 연봉을 삭감할 가능성이 크다. 반면 KBO리그는 ‘재난 상황’이 아니다. 팀당 144경기를 예정대로 치러 수입 감소를 최소화하려고 KBO와 구단이 노력 중이다. 팬들이 야구를 봐줘야 선수는 ‘재난 상황’을 맞지 않는다. 야구팬도 KBO리그를 다시 볼 기회를 얻었다. 못마땅할 때가 있어도, KBO리그는 아기자기하고 재미있는 콘텐트다. 관중석이 열리면 빨리 응원하러 가고 싶다는 이들이 많다. 미국 팬도 어느 팀을 응원할지 고민하고 있다. 마침 개막전에서 실책(5개 구장 3개)은 별로 없었고, 수준 높은 플레이가 많이 나왔다. 적어도 지금은 ‘국뽕 야구’에 취해도 좋겠다. 김식 야구팀장 seek@joongang.co.kr 2020.05.07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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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식의 야구노트] 야구의 새 법칙, 적자생존

메이저리그(MLB) LA 다저스의 에이스 클레이턴 커쇼(33)는 등판 4시간 전부터 분(分) 단위로 움직인다. 오후 7시 5분 경기라면 정확히 3시 5분에 자신의 루틴을 시작한다. 지난해 류현진(33·토론토)의 트레이너로 다저스에서 생활한 김용일 LG 수석 트레이닝 코치는 “커쇼는 마사지 베드 높이를 ㎝ 단위로 정확히 맞춘다. 스파이크 끈을 맬 때도 시계를 본다. 왜 저러나 싶을 정도로 철저하다”고 말했다. 류현진도 루틴이 있다. 등판 전날 감자탕을 먹고, 경기 시작 4시간 전에 냉·온탕 찜질을 한다. 이승엽(44·은퇴)은 한때 야구장 가는 길의 차로까지 정해서 운전했다. ‘멘탈 스포츠’인 야구에서 선수들은 루틴을 통해 물리적 준비와 동시에 심리적 안정까지 얻으려 한다. 2020년 스포츠맨들의 루틴은 완전히 깨졌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겨울 종목 대부분이 조기 종료했다. 개막 직전 멈춘 야구는 일정 재개를 논의 중이다. 이달 초 한국과 미국 야구 일정이 모두 멈췄다. MLB는 한 달 넘게 ‘봉쇄’됐고, KBO리그는 자체 청백전을 했다. KBO 선수들은 “개막일을 모른 채 준비하는 게 가장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코로나19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 이례적 상황인 만큼, 야구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개척 중이다. MLB는 5월 중순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에 30개 팀이 집결, 4~5개월간 단축 리그를 진행하는 ‘애리조나 계획’을 검토하고 있다. 홈 구장을 떠나서 무관중 경기를 치르기에 구단은 입장 수입을 올릴 수 없다. TV 중계권료 등 수입이라도 벌어 야구산업을 유지하자는 게 이 계획의 골자다. 커쇼가 이 계획에 강력히 반대했다. 그는 LA타임스 인터뷰에서 “우리는 야구를 하고 싶다. 하지만 가족과 몇 달간 떨어지는 건 동의할 수 없다. 무관중 리그는 경기력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걸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커쇼는 위대한 투수이면서 매우 가정적이다. 등판하지 않는 날에는 다저스타디움에서 아이들과 노는 게 그의 루틴이다. 한국이 방역에 성공하면서, KBO리그는 다음 달 초 관중 없이 개막할 전망이다. 그래도 전과는 다른 야구가 될 것이다. KBO의 ‘코로나19 대응 통합 매뉴얼’ 2판에 따르면, 선수들은 그라운드에 침을 뱉지 못한다. 맨손 하이파이브도 금지됐다. 현장에서는 “낯설고 불편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그러나 그들의 동의 여부와 상관없이 세상은 바뀌었다. 코로나19 종식 전까지는 불편과 동행할 수밖에 없다. 김용일 코치는 “청백전을 치렀어도 선수들 집중력은 많이 떨어져 있다. 긴장감을 유지하고 철저히 준비한 선수들이 좋은 시즌을 보낼 것”이라고 말했다. 달라진 환경을 탓하기보다 효과적으로 적응하는 게 중요하다. 2020년 야구는 강자(强者)가 아니라 적자(適者)가 이기는 게임이 될 것이다. 김식 야구팀장 seek@joongang.co.kr 2020.04.21 08:23
스포츠일반

[김식의 야구노트] 추신수와 햄버거, 그리고 마이너리거

추신수(38·텍사스 레인저스)는 햄버거를 보면 얼굴이 굳는다. "이건 굶어 죽기 전에야 먹는 음식인데…." 농담 같지만 이렇게 말하는 그의 표정은 그렇지 않다. 햄버거를 싫어해서가 아니다. 20대 시절 너무 많이 먹어서, 그 시절 가난이 떠올라서다. 10대의 추신수에게 햄버거는 맛있는 별식이었지만, 30대의 추신수에게는 굶어 죽기 직전이 아니라면 먹고 싶지 않은 음식이다. '눈물 젖은 빵'이다. 추신수의 고생담은 꽤 알려진 이야기다. 2001년 미국으로 떠나 2008년 풀타임 메이저리거가 되기까지 그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간을 보냈다. 마이너리거들은 연 5000∼1만 달러(600만~1200만원)를 번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한국의 두 배인 미국(6만 달러·7300만원)에서 받는 급여라고 믿기 힘들다. 야구 선수는 최저 시급 적용 대상이 아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로 인해 메이저리그 시범경기(마이너리그 선수들도 뛴다)가 중단되자마자, 음식 배달을 시작한 선수들의 사연이 소개됐다.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급여를 받지 못하게 된 마이너리거들에게 앞으로 두 달 동안 매주 400달러(50만원)의 특별수당을 지급하기로 결정했다. 텍사스 산하 마이너리그 팀의 선수들은 여기에 '추가 수당'을 받는다. 추신수가 마이너리거 191명 전원에게 1000달러(120만원)씩을 지원한다고 2일 외신들이 보도했다. 1000달러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모든 시민권자에게 주겠다고 약속한 돈과 같다. 추신수 개인이 마이너리거들에게 주는 돈은 총 19만1000달러(2억3000만원)에 이른다. 추신수는 외신 인터뷰에서 "나도 7년 동안 마이너리그에서 뛴 경험이 있다. (주급으로 생활이 어려워) 원정경기 식대를 아껴 아들 기저귀를 샀다"며 "마이너리그 상황이 당시보다 나아졌다지만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재능 있는 선수들이 돈 때문에 다른 일을 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기부 이유를 설명했다. 덤덤하게 말했지만 월 1000달러 정도를 겨우 벌었던 그의 마이너리그 시절은 더 눈물겨웠다. 20대 초반 하원미 씨와 결혼한 그는 또래 마이너리그 부부들과 함께 숙식했다. 부부가 침실 하나를 쓰고, 주방과 화장실을 공유하는 형태였다. 빵에 잼만 발라 먹는 게 식사의 전부였다. 대부분의 선수들이 빛나는 청춘을 그렇게 보낸다. 추신수처럼 메이저리그에 올라가 성공하는 경우는 극소수다. 추신수의 지난해 연봉은 2100만 달러(260억원)에 이른다. 열아홉 나이에 그는 혈혈단신, 무일푼으로 미국에 가서 '아메리칸 드림'을 이뤘다. 마이너리그 시절의 고생은 더 강해지고, 독해지게 만든 자양분이라고 추신수는 믿고 있다. 지난달 13일 시범경기가 중단된 직후, 추신수는 엘리 화이트(26)라는 선수가 동료들에게 한 말을 전해 들었다. 화이트는 "얼마 전 결혼했다. 야구에 집중하고 싶은데 수입이 없어지면 어떻게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화이트는 논-로스터 초청 선수로 텍사스 마이너리그 명단에 없는 신분이다. 추신수는 화이트도 지원 대상에 넣었고, 자신에게 나오는 메이저리그 식비를 그에게 보내주기로 약속했다.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은 메이저리그에서는 기부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애덤 웨인라이트, 프레디 프리먼 등이 여러 형태로 피해자들을 지원하고 있다. 산하 마이너리거 모두에게 현금 지원을 하는 경우는 추신수가 유일하다. 추신수는 지난달 코로나19 피해가 특히 컸던 대구·경북 지역을 위해 써달라며 2억원을 기부한 바 있다. 마이너리그 시절, 추신수는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도 했다. 아내와 어린 아들(무빈)의 생계조차 책임지지 못한 가장의 죄책감이 추신수의 꿈을 꺾기 직전이었다. 그때 하원미 씨는 "처자식이 걱정 된다면 내가 무빈이를 데리고 한국으로 돌아가겠다. 당신은 미국에서 끝까지 도전하라"고 했다. 추신수는 "내가 20년 전 미국에 왔을 때 가진 게 아무것도 없었다. 지금은 야구 덕분에 많은 것을 가졌으니 다른 사람들에게 갚아주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젊은 마이너리거들을 보며 20대의 자신을 투영했을 것이다. 그래서 절대로 꿈을 꺾지 말라는 뜻으로 지원금을 준 것이다. 추신수의 기부 소식을 미국 외신뿐 아니라 일본 미디어들도 크게 다뤘다. 메이저리그에 '야구 재벌'은 많지만 실제로 남을 위해 돈을 쓰는 선수는 드물다. 10여 년 전, 남편이 꿈을 잃지 않도록 내조했던 하원미 씨도 함께 고민해 지원책을 마련했다. 전 세계가 코로나19와 사투를 벌이는 동안 여러 영웅이 탄생하고 있다. 의료진의 노력과 희생, 시민들의 연대와 배려가 바이러스와 싸우고 있다. 추신수는 '선배'로서, 또 '동업자'로서 마이너리거들의 꿈을 응원했다. 그는 햄버거를 잊지 않았다. 김식 야구팀장 seek@joongang.co.kr 2020.04.03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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